영화 암살자들: 내돈 내고 내가 소비되는 이유 [암살자들-프롤로그]

 


본 포스팅은 '자유와자본' 6부작 기획 시리즈의 출발점이 된 프롤로그입니다.




[프롤로그] 영화 암살자들, 돈 주고 보러 간 영화에 내가 소비되고 말 것인가

1. 나스닥 시장의 가치 진단과 일상의 개연성 — 도레미스파키 독자들의 본질

도레미스파키(doremisparky.com)를 찾아오고 함께 사유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숫자로 표시되는 나스닥 주식을 사고파는 표피적인 트레이더가 아니다. 우리는 차트 너머의 기업 재무제표와 산업의 생태계를 살피듯,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현상의 맥락과 개연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냉정하게 진단한 뒤에야 비로소 가치를 판단하고 매수 결정을 내리는 주체적인 개인들이다.

주식 시장에서 잡음(Noise)과 진짜 가치(Signal)를 가려내지 못하면 소중한 자산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듯,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정보와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맥락이 파괴된 선동에 휘둘리고 자극적인 서사에 이성을 내어준다면, 그것은 자본시장에서 나쁜 주식을 고가에 상투 잡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지적 파산'을 의미한다.

그런 우리들이 오늘날 범람하는 대중문화의 스크린 앞에 서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첫 번째 본질적인 질문이 있다.

"나는 내 돈을 주고, 나를 세뇌시키는 자극의 소모품(소비재)이 되어 돌아올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다. 내가 내 인생과 사유의 주인으로서 가치를 매매하는 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거대 미디어 카르텔과 렉카 생태계가 짜놓은 판 위에서 영원히 소비당하는 객체로 전락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철학적 갈림길이다.


2. 전체주의 북한과 '매매'라는 자유를 모르는 삶

전체주의 북한 체제에서 살다가 사선을 넘어 자유 대한민국으로 찾아온 탈북자들은 처음 사회에 적응할 때 '매매'라는 단어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 본질적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스스로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재화나 가치를 평가하고 사고파는 자율적인 시장 행위 자체가 그들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에서 개인에게 부여되는 것은 '매매'의 자유가 아니라, 국가와 정권이 주입하는 일방적인 통제와 선동뿐이다. 특히 북한 정권이 근대사와 정치적 정당성을 가르칠 때 가장 강력하게 활용하는 매체가 바로 '영화'다.

북한은 대중에게 있는 그대로의 팩트(Fact)를 제공하지 않는다. 팩트를 주면 개인이 각자의 이성과 경험을 통해 인과관계를 따져보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율적 판단을 허용하지 않는 독재 집단에 있어 대중의 독립적인 사유는 곧 체제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따라서 그들은 각색되고 가공되며 극단적으로 연출된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누가 영웅이고 누가 악당인지, 누구를 찬양하고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미리 정해서 주입한다. 슬픈 음악을 깔아 단 한 명의 죽음을 수만 명의 희생보다 더 슬프게 부풀리고, 잔혹한 폭력이나 우발적인 살인조차 영웅적인 서사를 입혀 정당화한다.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이용해 온 사회 구성원들의 감정과 판단을 단번에 '균일화(Equalizing)'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유 대한민국은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문헌과 인터넷, AI를 통해 누구나 팩트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의 나라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자유 사회에서도 안 가르치고 숨기는 북한과 똑같은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지식과 문헌이 열려 있음에도 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정보가 차려져 있음에도 찾아보지 않으며, 백지 상태의 뇌로 스크린 앞에 앉아 주는 대로 삼키는 관객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안 가르치고 숨기는 북한의 조건이나, 가르쳐 줘도 안 배우고 안 찾아보는 무관심의 조건은 결과적으로 완전히 동일해진다. 지적 게으름에 빠진 개인은 자유 사회에 살면서도 전체주의 영화에 선동당하는 북한 주민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3. "모든 사람은 고용된 자이다" — 스크린 뒤 프레이머(framer)들의 실체

대중 미디어를 소비할 때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차가운 명제가 있다.

"모든 사람은 고용된 자이다."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연출, 거창한 정의감,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 서사는 결코 절대적인 진실이나 중립적인 예술이 아니다. 그 모든 영상물은 특정 자본, 정치적 카르텔, 그리고 진영 논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고용된 자들'이 기획하고 제작한 연출물일 뿐이다.

영화 제작자, 감독,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화면 속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는 누군가의 자본과 의도에 고용되어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노동자이자 개입자들이다. 대중의 즉흥적인 관심과 자극을 끌어모아 펀딩을 받고, 자극적인 프레임을 짜서 티켓값을 갈취하며, 자신들의 이념적·상업적 목적을 달성한 뒤 뒷일은 책임지지 않는 생태계가 바로 현대 미디어 상업주의의 본질이다.

진영 논리라는 거창한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실상을 벗겨보면 '자극적인 이슈를 팔아 돈을 벌고 대중의 지성을 파괴하더라도 내 주머니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도덕적 해이와 책임 방기가 자리 잡고 있다. 관심만을 소비해 버리고 그 결과로 사회가 분열되든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든 나 몰라라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영 논리의 탈을 쓴 가장 비열한 상업주의다.

우리가 내는 티켓값과 시청각적 관심은 그 고용된 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 그들의 '플러스 통장'이 된다. 하지만 그들이 차려놓은 픽션에 세뇌되고 왜곡되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면, 소비자로서의 나의 삶은 고작 영화 한 편 때문에 지성과 사유가 '마이너스'로 미끄러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사고파는 가치를 진단하는 매매자(trader)가, 고용된 자들의 기획 상품에 속아 스스로 소비재로 전락하는 것만큼 처참하고 허망한 일은 없다.


4. 대중의 사랑을 배은망덕으로 되갚은 맥락의 '암살자들': 문화 권력의 폭주

최근 영화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단순히 상업적 영화의 흥행을 넘어선 문화 권력의 폭주를 보여준다. 유가족이 엄연히 눈을 뜨고 살아있고, 객관적인 사법 기록과 역사적 증언이 엄존하는 비극적 사건을 두고, 한쪽 진영에서는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특권을 내세워 아버지가 어머니를 암살했다는 식의 패륜적인 플롯을 서슴없이 영화화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는 배우들의 태도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자라 영향력을 얻은 유명 배우들이, 최소한의 윤리적 선과 개연성마저 저버린 작품의 대본을 받고도 출연을 승낙하고 레드카펫에서 웃음을 짓는 모습은 대중을 향한 명백한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만약 반대쪽 진영에서 5·18을 소재로 한 자극적인 영화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음모론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면,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이 '표현의 자유'라며 묵인하겠는가? 그들은 당장 성역을 침범했다며 제작자와 배우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고 폭력적인 비난을 쏟아부을 것이다.

자신들은 아무거나 꺼내어 마음대로 지어내고 구체적으로 연출하며 대중의 감정을 선동하면서도, 타인의 학문적 호기심이나 다른 시각의 화두조차 법적 처벌과 집단적 괴롭힘으로 억누르는 이중잣대—이것이 바로 오늘날 문화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보여주는 '노란 완장'의 폭주다.

대중이 보여준 사랑을 자산 삼아 성장한 자들이, 그 사랑을 준 대중의 역사적 맥락과 상식을 폭행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냉정해져야 한다. 그들이 만드는 잔치에 내 돈을 보태주고, 그들의 배은망덕한 행태에 티켓값으로 박수를 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5. 생각의 복리를 만드는 결단: 내 돈 주고 소비되는 삶을 거부하라

오래된 드라마 중 조형기 배우가 주연한 3부작 드라마 <완장>이 있다. 이것의 원작인 소설 <완장>에서 도덕성과 자격이 없는 자가 노란 완장 하나를 차고 온 동네를 억압하며 폭주했듯, 오늘날 미디어의 완장을 찬 자들은 대중의 지성과 역사관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르려 한다.

그러나 나스닥 시장에서 소음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한 데이터와 기업의 가치를 진단하여 '자본의 복리'를 만들어내는 도레미스파키 독자들은 달라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차려 놓은 토끼굴 속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가 다시 돌아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은 소비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시장에서 나쁜 주식을 단칼에 잘라내듯, 일상의 맥락과 인과관계를 폭행하는 저질 미디어와 자극적인 선동 영화를 냉정하게 판별하고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 지성의 안전자산을 지키고, 매일매일 더 명징한 판단력을 쌓아가는 '생각의 복리'의 출발점이다.

영화가 선생처럼 나를 가르치게 내버려두지 마라. 고용된 자들이 짜놓은 픽션의 프레임에 내 소중한 돈과 시간, 그리고 독립적인 사유를 바치지 마라.

오늘도 스크린을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물어야 한다.

"나는 가치를 진단하고 매매하는 주체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내 돈을 바쳐 스크린의 노예로 소비되고 돌아올 것인가?"




 Doremisparky is an independent writer and analyst covering Korean Peninsula security, global defense tech, and the strategic dynamics of the ROK-U.S. all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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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ro] 분노를 휘발시키지 않고, 축적된 자본으로 반격하겠습니다

영화관 문을 나서며 좌우를 떠나 많은 상식적인 국민들이 느낀 것은 단순한 호불호가 아닌 깊은 참담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여전히 "그저 영화적 상상력일 뿐"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역사적 유산과 타인의 비극을 조롱하는 무도함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우리는 이러한 저열한 소음 공작에 일일이 피로감을 느끼다가 결국 스스로 잊어버리고, 분노를 일회성으로 휘발시키곤 했습니다. 상대가 노리는 것 역시 바로 우리가 지쳐서 포기하는 그 지점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릅니다. 결코 그냥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가 짜놓은 진흙탕에서 일일이 대꾸하며 기운을 빼는 방어전은 끝났습니다. 거짓의 핑계를 무너뜨리는 역사적 팩트, 2030 청년들의 패기 넘치는 팩트 폭격, 그리고 뇌과학과 자본의 철학이라는 중량감 있는 '지적 자본'으로 무장하여 비휘발성의 기록으로 단단히 축적할 것입니다.

내 돈 주고 나를 소비했던 참담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대한민국을 지탱해 온 '자유와자본' 5부작 기획 시리즈로 당당히 권토중래(卷土重來)의 대답을 올립니다.


🔗 [자유와자본 기획 연재: 영화 <암살자들>을 넘어 권토중래로]

👉 [1부] 뇌과학과 우파적 직관: 파괴적 인상을 읽어내는 자본의 안목

선동과 무질서를 경계하는 뇌 신경망, 직관적 리스크 헤징과 생각의 복리


👉 [2부] 나비처럼 날아 급소를 찌르다: 2030의 팩트 폭격에 지적 자본을 실어주는 법

하이브리드전 시대, 2030의 사이다 논리와 선배 세대의 사상적 무장


👉 [3부] 마중물의 역사적 진실: 가난한 농업국가를 세계적 산업강국으로 바꾼 결정적 종잣돈

대일청구권자금 5억 달러, 제주 감귤, 그리고 1966년 스크린쿼터제의 진실


👉 [4부] 거짓의 소음을 뚫고 피어나는 진실의 품격: 박근혜 전 대통령 형제분들을 향한 위로와 권토중래의 결의

조롱을 넘어선 역린, 역사적 부채감과 체제 수호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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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견뎌낸 우아함, 억울함을 씻어내는 지적 자본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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